처음 책을 받아 읽기 시작했을 때에 나는 ‘이 책의 장르가 소설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책 전체를 훑어봤다. 아니 이건 소설이 아니라 르포라고 해야 맞는 게 아닌가? 단순히 소설이 이렇게나 진한 공감각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가끔 애니메이션이나 판타지 영화에서 제목조차 알아보기 힘든 비밀스러운 느낌의 책을 펼쳤다가 번쩍하는 빛과 함께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들이 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며 받은 느낌이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번쩍하고 빛을 내며 요란하게 사람을 휘감아 끌고 들어가는 것과는 좀 다르다. 의심스러운 느낌으로 불어오는 태풍의 끝자락 바람을 시작으로 점점 소용돌이치는 태풍의 한가운데로 나를 휘감아 끌고 가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몰아치는 바람을 느끼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눈앞에 양해중 씨의 집에도 있을 법한 선풍기가 눈앞에서 털털거리며 돌고 있었다. 꿉꿉한 선풍기 바람을 느끼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선풍기 너머 베란다로 양해중 씨가 살고 있을 법한 동네 저 멀리를 바라보면 태풍은 저 멀리 지나간 듯 남은 바람기를 털며 흔들리는 나무만 보이는 듯한 환상을 보여준다. 잠시 책을 덮고 현실로 빠져나와 이 책을 뭐라고 해야 좋을지 고민했다. 폭풍의 책? 단순히 폭풍의 책이라고 하기에는 폭풍이 아닌 실바람 같은 바람을 느끼게 하는 부분도, 해변가의 두껍고 습한 더운 공기를 느끼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사실 나는 소설을 잘 읽지 못한다. 재미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니고 읽다가 주인공과 몇 주변 인물을 빼놓고 다른 인물이 등장하면 이 인물 이름이 뭔지, 뭐 하는 사람인지 자주 까먹어서 페이지를 넘기기가 힘들다. 그런 이유로 책 여러 페이지를 오가며 읽다 보면 금방 지쳐서 소설엔 자주 손이 가지 않았다. 근데 이 책은 한번 잡으면 요술 같은 바람에 휩싸여 끝까지 책을 읽게 만든다. 처음 읽고 다시 읽어봐도 바람의 방향은 아주 조금 바뀐 것 같아도 여전히 태풍 속에 들어갔다가 빠져나온 느낌은 그대로였다. 이런 몰입감은 어쩌면 양해중 씨가 나와 비슷한 나이의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로 그려지고 있어 더한지도 모르겠다. 양해중 씨가 이름을 바꾸고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기도 나와 같고 인터넷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아오이 유우의 사진을 모으던 시간도, 대학에 들어가 우당탕탕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을 벌이고 일기를 쓰는 것도, 어쩌면 양해중 씨가 친구에게 말실수를 했던 날도 내가 친구에게 말실수 한 날과 같을 지도 모르겠다. 꼭 내가 몇 년 전에 쓴 싸이월드 일기장을 들춰보는 기분이었다.


책을 두 번이나 완독하고 나서는 이 책을 어디에 꽂아둘까 고민을 했다. 책의 결이나 느낌은 조금 다르지만 함께 세워두고 싶은 책을 몇 개 빼어 놓고서는 결정했다. 책장 위에서 세 번째 줄 맨 앞 쪽에 박완서의 『한 말씀만 하소서』를 꽂아 두고 같은 줄의 2/3이 조금 넘는 지점에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을 꽂았다. 그리고 임소라의 『언제나 양해를 구하는 양해중씨의 19가지 그림자』를 줄의 가장 뒤 쪽 최근에 산 책을 꽂아두는 곳에 넣었다. 책을 꽂으면서 이 책이 200만 부 팔리고 일본에 팔리고, 대만에 팔리고 또 영화화되어 영화 한 줄 평을 써넣는 상상을 했다.

“로튼토마토 지수 93%. 전미가 울었다.”
“실화보다 더 실화 같은 한국 여자 양해중 씨의 이야기.”
“국적과 상관없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보통 사람의 이야기.”
“시종 킬킬대게 만드는 검은 유머와 날카로이 벼려진 회색 플롯 사이를 가볍게 넘나드는 무지갯빛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