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함께 합정에서 양꼬치를 먹던 날이었다. 늘 그렇듯 우리의 대화 주제는 두 가지였다.
1.책
2.다른 사람들 험담.
둘 중 뭐가 더 나쁜 건지 모르겠다. 뭐가 더 즐거운지는 분명하지만...
다소 심드렁하게 요즘 읽은 책과 친구가 작업하는 책, 그리고 내가 쓰고 있(어야 하)는 책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친구가 갑자기 내게 링크를 보냈다. 종료가 이틀 남은 텀블벅 펀딩 페이지였다. 친구는 정말 좋아하는 작가라고, 한번 보고 관심 있으면 펀딩하라고 했다. 프리랜서 편집자와 작가. 친구와 나는 직업적인 독자였고 언젠부턴가 책을 읽는 게 예전만큼 신나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런데 정말 좋아하는 작가라니? 일종의 좀비 같은 건가? 의아했던 나는 일단 ‘밀어주기’를 눌렀다. 98퍼센트였던 달성률이 100퍼센트가 되었다. 순간 뭔가 큰일이라도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저 책을 샀을 뿐인데...
이미 눈치챘겠지만, 그것이 내가 임소라 작가를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대략 2주 후에 작가가 서울과 홍콩과 도쿄와 시카고의 지하철을 타며 쓴 ‘도시, 선’ 시리즈 네 권이 도착했다. 작고 예쁜 책들이었다. 나는 다소 경쟁심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도 같다. 나 역시 대중교통(택시)에 대한 작은 책을 쓴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들이 원래 그런 건지 나만 쪼잔한 건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일단 책을 펼치자 그런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현실 웃음을 터뜨리며 페이지를 넘기느라 딴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당연한 의문은 책을 덮은 다음에야 떠올랐다. 왜 나는 지금까지 이런 작가를 몰랐던 거야? 대체 왜?
이런저런 대답이 가능하다. 게을러서, 구식 독자라서, 타성에 젖은 상업 출판 시스템의 노예라서, 아니 모를 수도 있지 등등︎ 이유야 뭐가 됐건 이제라도 이런 작가를 알게 된 나는, 친구를 따라 마음 속에 ‘정말 좋아하는 작가(NEW)’ 카테고리를 부활시켰고, 트위터에서 출판사 하우위아 계정을 팔로우 했으며, 새로운 연재 소식을 듣자마자 구독을 신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연재분이 ‘경주의 앙금케이크’라는 제목으로 메일함에 도착했다. 나는 조금 놀랐다. 내가 예상한 건 양해중이라는 희극적인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좌충우돌하는 시트콤 같은 소설이었는데, 막상 받은 건 (비유하자면) 발자크의 ‘인간희극’ 총서를 체호프가 다시 쓴 것 같은 느낌의 진지한 소설이었다.
『언제나 양해를 구하는 양해중 씨의 19가지 그림자』는 한국이라는 여성혐오 사회에 대한 탐구이며, 그 속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다. 양해중 씨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는 각각의 단편은 이내 세심하게 선별한 사회면 뉴스로 이어지고 곧바로 뉴스의 내용을 극화한 듯한 인물들의 사연이 펼쳐진다. (스포일러 주의) “여성가족부에서 성범죄자의 신상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성범죄자알림e’를 보급하고, 헌법재판소에서 강제추행범의 신상 정보 등록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렸던” 시기에 “당시 양해중 씨와 6년간 교제한 남자친구의 누나였던 고경주 씨”가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방문했다가 어쩌면 시아버지가 될 수도 있었을 남자의 발목에 채워진 전자발찌를 발견하고, “관세청에서 중국산 몰래카메라 764점을 불법 수입한 업체 세 곳을 적발한” 즈음에 “양해중 씨의 학과 동기였던 신정은 씨”가 돈을 주지 않으면 불법적으로 촬영한 정은의 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받는 식이다. 이렇듯 인물도 상황도 시기도 모두 다른 19편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주는 건 양해중 씨의 존재다. 양해중 씨는 언제나 양해를 구하지만 양해의 이유는 매번 다르다. 각각의 이야기가 전하는 상황이 서로 다르듯, 그 안의 양해중 씨의 모습 또한 서로 다른 것이다. 물론 그 모두가 한국 사회의 모습들이고, 양해중 씨의 모습들이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SM에 탐닉하는 그레이의 다양한 모습들인 것처럼. 물론 차이가 있다. 후자의 그림자가 가리키는 것이 젊고 잘생긴 억만장자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내밀한 욕망이라면, 전자의 그림자가 가리키는 것은 뻔히 드러나 있지만 좀처럼 보려 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차별과 혐오다. 임소라는 직설적인 형식과 내용을 통해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 차별과 혐오가 있어요, 저기도, 그리고 저기도, 그리고 또... 정말 안 보여요?
임소라의 작가적 야심이 드러나는 건 바로 그 직설화법이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누구라도 이해하지 않을 수 없는 주제를 담으면서도, 그는 여전히 재미있고 잘 짜여진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작가의 의도는 메일링 연재보다 단행본에서 좀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19개의 단편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말 그대로 큰 그림이 된다. 더불어 부록으로 추가된 양해중 씨의 일기를 통해, 그간 언뜻언뜻 스쳐지나가던 양해중 씨의 모습을 또렷하게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양해중 씨는 자신의 일기가 독자들에게 공개되는 것을 결사반대했겠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 『언제나 양해를 구하는 양해중 씨의 19가지 그림자』를 다시 읽으며 새로운 의문이 떠올랐다. 왜 임소라 작가는 아직까지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 거야? 대체 왜? 아무리 생각해도 적절한 대답은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유일하게 논리적인 결론을 내렸다. 아직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 거라고. 어쩌면 이 책이 초인기 작가를 향한 첫걸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 경쟁심도 시기심도 없이,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