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건, 늘 화나는 일과 마주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국가가 내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의 19쪽에는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던 2019년 4월 11일의 일이 언급돼 있는데,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임신 14주까지만 여성의 의사에 따라 낙태를 가능하도록 하는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실제 벌어진 사건을 언급하며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픽션으로 재구성하는 『언제나 양해를 구하는 양해중 씨의 19가지 그림자』(이하 『양해중 씨』)는, 그래서 읽는 우리들의 존재로 완성된다. 우리는 이 책을 읽는 각기 다른 시점에 여성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떠올리며 각자의 코멘터리를 추가할 수 있다. 한국 여성의 삶에 대한 아카이브이자 양해중 씨의 연대기이기도 한 이 책을, 앞으로도 종종 펼쳐보며 무엇이 바뀌고 바뀌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싶다. 나처럼 양해중 씨의 그림자일 수많은 다른 여성들과 함께, 기왕이면 화낼 일보다 환호하고 안도할 일이 많기를 바라면서.


🖇함께 읽으면 좋은 이야기

📎정세랑 『옥상에서 만나요』 중 ‘웨딩드레스44’
웨딩드레스를 둘러싼 44명 여성들 각자의 이야기. 『양해중 씨』를 읽자마자 이 단편이 떠올랐다.

📎윤이형 『붕대감기』
양해중 씨와 다른 여성들은 완전무결하게 착한 사람들도, 어떤 경우에도 다른 여성을 돕거나 사랑하는 사람들도 아니다. 서로를 싫어하기도 괴롭히기도 그냥 스쳐 지나가기도, 돕기도 사랑하기도 위로하기도 하는 존재들이다. 그런 모습이 『붕대감기』 속 여성들과 닮았다.

📎강화길 「음복」
무지는 특권을 가진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것이다. 가부장제 내에서 자신이 가진 특권을 볼 줄 모르는 남성의 해맑은 무지를 그린 ‘음복’과 『양해중 씨』 속 남성들이 과연 다를까?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양해중 씨는 김지영 씨처럼 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