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중’이라는 중심인물 주변에 드리워진 19가지 그림자는 나의 것 같기도 하다가 남의 것 같기도 하다가 결국 우리 모두의 것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 마음이 슬퍼졌다. 마치 식어버린 파이 앞에 앉아 물끄러미 그것을 한참 동안이나 말없이 보며 ‘어쩔 수 없지.’라고 체념하게 되는 마음이 내 안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 세계에서 자주 마주하게 되는 일들이 이 안에 있다.

작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맞닥뜨릴 수 있는 부분들을 비틀며 식어버린 파이를 다시 한번 새롭게 조리해 내놓았다. ‘양해중’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19명의 서사는 여성 이슈를 아주 균형감 있게 풀어내고 있다. 특히 제목의 ‘그림자’라는 표현은 표면에서 다루는 서사 아래 숨겨진 이야기를 암시함과 동시에 작가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중의적으로 드러내지만 그러면서도 특유의 유머를 잃지 않는다. 또한 구독이라는 디지털 활자에서 종이의 활자로 이어진 이 책은 쓰기의 방식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이런 태도를 통해 작가가 이 시대를 어떻게 읽고 대하는지를 알 수 있으며 그것은 작품 세계에서도 자연스레 이어진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긴 지 며칠이 지난 지금, 문득 해중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주인공 양해중처럼 지금도 많은 이들이 누군가에게 양해를 구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역사의 반복 앞에 더이상 체념이 아닌 변화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보며, 수많은 그림자를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