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중 완성하기
『언제나 양해를 구하는 양해중 씨의 19가지 그림자』를 통해 양해중 씨를 완성하기란 쉽지 않다. 책을 펴면 먼저 양해중 씨를 둘러싼 열아홉 명의 사람들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데, 이야기마다 양해중 씨에 대한 언급이 아주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은 둘째 치고, 읽다 보면 모든 신경이 양해중 씨에 대한 단서보다는 이야기 주인공의 강렬한 사연들에 쏠리기 때문이다. 사실 이야기 도입부마다 소개된 기사를 되새겨 보는 것만도 너무 바쁜데,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불합치 결정 기사, 아동음란물 다크웹 사이트 운영자 구속 기사 등 양해중 씨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통과해 온 일들을 한 권의 책에 모아 다시 보니 정말 무섭고 거대한 세상이었다, 새삼스러운 기분도 든다. 슬픔통쾌분노공감 모든 감정들을 겪으며 열아홉 편 이야기를 모두 읽고 나면 아차차 그래서 양해중이 누구라는 거지... 사실 뭐 하는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다... 멍해진다.
그렇게 양해중 씨에 대한 어렴풋한 그림자만 갖고 부록으로 넘어갔을 때의 안도감. 부록에는 양해중 씨의 일기 열아홉 편이 수록되어 있다. 마침내 양해중 본인의 등장, 게다가 시간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다니! 양해중 씨에 대한 책을 읽고도 양해중 씨에 대해 전혀 모르고 마는 불상사는 없을 것 같아 안심이 됐다. 대학교 4학년 때 썼던 일기의 날짜를 보니 나와 해중 씨는 겨우 서너 살 차이가 나는 또래인 것 같다. 부록의 마지막은 2020년 3월에 쓰인, 양해중 씨가 재택근무 2주 차에 쓴 일기인데, 이렇게 끝이 난다. “얼른 사무실도 다시 나가고 요가도 가고 여행도 가고 싶다.”
뜻대로 되는 일이 정말 없다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갖고 있는 생각이다. 다만 어렸을 때는 내가 받은 상처가 제일 크고 절대적이었다면 지금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뜻하지 않게 입힌 상처도 많다는 것을 안다. 양해중 씨가 무심코 건넨 말에 자신의 슬픈 과거를 모두 들춰보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내 아픔이 제일 클 때는 그냥 엉엉 울기만 해도 괜찮았는데 내가 누군가에게 건넨 말이, 어떨 때는 내 존재 자체로도 누군가의 아픔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엉엉 울 수도 없다. 그렇게 되면 모든 일 앞에서 같은 태도가 된다. 내가 너무 슬플 때, 거대한 부조리를 마주했을 때, 내가 누군가를 슬프게 했을 때, 똑같이 무기력하고 허무한 기분. 침대에 누워 있었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텐데 그 편이 낫겠다는 기분. 부록에 실린 일기를 보면 양해중 씨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은데 책의 마지막 문장이 여러 가지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라서 그게 좋았다. 해중 씨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돌아오면 왠지 기분 좋아질 것 같다. 빨리 친해지고 싶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아는 척하겠지만 당신 일기 다 봤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겠지.
📝정기현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