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나는 경계심 많은 독자가 되었다. 어떤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기까지 오래 머뭇거리는, 작품 하나가 마음에 들었다고 해서 곧바로 그 작가의 팬이 되지 않는, 밑줄 그은 페이지를 SNS에 쉽게 올리지 못하는.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아무런 의심도 경계도 없이 좋아하는 마음을 드러내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내게 경계심을 가르친 건 한때 내가 사랑했던 것들이었다. 아껴 읽던 시집에서 자꾸만 젖가슴과 자궁 같은 단어들이 튀어나올 때. 작품 안에서는 사랑과 정의를 말하던 작가가 작품 밖 현실에서는 권력을 마구 휘두르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소설에서 나와 다른 여성들에 대한 멸시가 담긴 문장을 만났을 때. 그럴 때마다 당황과 실망 사이를 오가며 경계심을 학습했다.
한국에서 또 다른 양해중으로 살아가며 나는 아주 많은 것을 경계하고, 아주 많은 것들로부터 도망칠 준비를 한다. 단지 여가로서의 독서를 즐길 때조차. 솔직히 말하면 조금 두렵다. 지금 읽는 책이 나를 모욕하고 기만할까 봐. 결국 이 작가에게도 실망하게 될까 봐.
하지만 임소라의 글을 읽을 때 나는 아무것도 경계하지 않을 수 있다. 도망칠 준비를 하지 않은 채로 무방비하게 그가 만든 세계에 빠져들 수 있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기 전에 동네방네 소문낼 수 있다. 내가 이 책을 좋아한다고. 이 작가를 사랑한다고. 이 마음이 무엇인지 나는 안다. 이것은 아마도 확실히, 신뢰다. 나는 임소라 작가를 신뢰한다.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기쁨은 오직 경계심 없는 독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언제나 양해를 구하는 양해중 씨의 19가지 그림자』는 내게 그런 기쁨을 주었다. 어쩌면 나는 이미 양해중 씨의 20번째 그림자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우리가 서로의 세계를 잠시 스쳐 지나갔다면. 해중 씨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하현의 냉장고, 하현의 화분, 하현의 카드지갑. 책에는 없는 20화의 제목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