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소라 작가가 나에게 추천사를 부탁했다. 다음 책을 내게 된다면 어마어마한 인기작가의 추천사에 기대어 얼떨결에 내 능력치보다 잘 되고 싶다는 속물적인 욕망만 가지고 있는 내게 이 사건은 원인을 추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첫째, 나는 모르고 있었지만 내가 임소라 작가를 능가하는 출판계에서의 명성을 가지고 있었는가? 아무리 나를 과대평가 해보려 해도,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둘째, 내가 집요하게 작가님의 행적을 좇는 신경 쓰이는 팬이어서인가? 이편이 맞는 것 같다. 온라인 공간은 물론이고 광화문의 언리미티드에디션, 세상의 끝 노원의 언리미티드에디션(나는 마침 노원에 산다), 코엑스의 서울국제도서전까지... 어디서든 나타나는 나를 신경 쓰지 않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잘 찾아오셨습니다.

임소라 작가는 독립 출판계의 전설의 레전드다. 이 말은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순수하게 감탄을 내뱉은 업계인(?)의 말을 전해 들은 것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내 지난 인생을 반추했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아니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어느 분야의 ‘전설의 레전드’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내가 어떤 분야의 전문가에 가까운 인정을 받았던 것은 서울에서 맛있는 마파두부 집을 알려줄 때뿐인데… (마파두부를 좋아합니다)

나는 독립 출판계의 전설적인 존재, 임소라 작가의 초기작부터 거의 모든 책을 섭렵했다.  2014년에 펴낸 인터뷰집 'HOW WE ARE' 시리즈부터 소설 '언제나 양해를 구하는 양해중 씨의 19가지 그림자'까지 임소라 작가는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책에서 특유의 재치를 뽐낸다. 나는 그가 너무 적확하게 관찰해낸 나머지, 나까지 그 장소로 소환하는 듯한 묘사와 중얼거리듯 덧붙이는 한마디의 말을 특히 좋아한다. 그가 무심하게 그러나 사실은 모든 걸 계산한 후 던진 문장 하나에 소리 내 웃기도 하고 간담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임소라 작가의 이런 장기는 소설 '언제나 양해를 구하는 양해중 씨의 19가지 그림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양해중 씨는 2020년 한국 땅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법한 일들 한가운데로 나를 불러낸다. 나는 이 소설을 일주일에 한 번 메일로 받아서 읽는 호사를 누렸는데, 모래알처럼 뿌려진 여성 혐오와 차별을 매일 밟고 살아가는 2020년 한국의 30대 여성으로서 매번 글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메일을 받은 날, 전자발찌를 한 성범죄자를 ○○로(스포일러 주의) 만나는 위기를 겪었을 때는 (물론 소설의 인물이 겪은 사건이다) 메일을 읽고 있던 사무실에서 등 뒤에 한줄기 식은땀이 흘렀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건드리면서도 그 사건 안에 태연히 나를 밀어 넣는 작가의 솜씨에 나는 매번 감탄했다. 여러분도 이 책을 여는 순간, 여느 좋은 책이 그러하듯 양해중 씨의 세상에서 지금의 세계, 2020년의 한국을 바라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은 너무나 흥미진진해서 하나의 그림자만 들춰보려고 해도 19가지 그림자를 모두 확인한 후에야 책장을 덮을 수 있다. 바로 이런 게 전설, 영어로 레전드라고 불릴만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