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에 해방촌의 한 책방에서 임소라 작가의 책을 처음 만났다. 그 책은 거울 너머 시리즈 중 하나인 대형무덤이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작업을 하는 작가가 있었네! 놀랍고 신난 마음으로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 나는 이 작가에게 관심이 생겨 SNS 계정을 찾아 팔로잉을 하고, 작가의 다음 작업을 눈여겨보았다. 임소라 작가가 꾸준히 자신의 책을 내는 것을 보며 독자로서 기쁘고, 마음 든든했다. 그런 내게 좋아하는 작가의 추천사를 쓰게 되는 날이 오다니.


『언제나 양해를 구하는 양해중씨의 19가지 그림자』를 읽으며 나는 마인드맵을 그렸다. 양해중을 중심으로 등장하는 인물, 인물과의 관계, 인물이 겪은 일의 요약, 연도. 대략적으로 맵을 그려 양해중이란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알고자 했다. 맵을 그릴수록 양해중은 거대한 괄호 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모르겠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의미의 괄호. 나는 그 괄호 안에 내 이름도 넣어보고, 내가 아는 사람들의 이름도 하나씩 넣어보며 생각했다. 우리 모두 양해중이면서, 양해중 옆에 있는 사람이다.


한 페이지를 꽉 채운 마인드맵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아니, 한 사람의 주변에 이렇게나 많은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들이 있다니. 어렴풋이 알고 있던 사실이 더 확실하고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들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에겐 두 번은 없어야 할 개별적인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 그런 사람이 너무나 많다. 내가 살아온 삶 안에도 나와 길고 짧은 인연을 가진 무수한 사람들이 있을 텐데. 각자 겪은 이야기를 펼쳐 놓으니 이렇게나 무성하다. 그 무성함이 아프고 끔찍하지만, 이 책은 그것을 아프고 끔찍하게 그냥 두지 않는다. 각 이야기 끝에서, 뒤에 이어질 이야기를 상상하면 작가의 마음을 알게 된다. 우리가 모두 함께 있다고.


소설은 있을 법한 이야기를 쓰는 장르라는데, 『언제나 양해를 구하는 양해중씨의 19가지 그림자』엔 있을 법하면서 이미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현실과 현실적 허구가 교차하면서 내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19명의 인물이 지금도 내 주변에 있다. 나는 마인드맵의 중심이 되어 자꾸만 뻗어 나가는 인물들의 삶을 생각한다. 우리 중 누구라도 19가지 이상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림자로 이루어진 세계 속에서 위트를 잃지 않으면서. 임소라 작가는,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