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2일에서 4월 2일까지 총 71팀의 새로운 책갈피를 모아 판매하는 특집 「71개의 책갈피」가 유어마인드에서 진행된다. 하우위아는 이번 행사에 ‘CMY+K’라는 이름의 책갈피로 참여한다. 이 글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로 첫째는 ‘CMY+K’ 제작 과정의 기록이고, 둘째는 책갈피 사용법에 대한 안내이다.



첫 번째 안은 그동안 만든 책의 모서리를 모아보는 것이었다. 먼저 ‘그동안 만든 책’의 범주를 정해야 했는데, 사이트 메인에 해둔 것처럼 2017년 《거울 너머》 시리즈부터 포함하기로 했다. ‘그동안 만든 책’에서 2017년 이전에 만든 책을 제외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은 이후 3일 동안 고민을 해봤는데 이유랄 게 참 자질구레하다. 일단 이미지 파일이 없으며, 사진을 제대로 찍어둔 것도 없다. 표지로 쓸 종이에 도장을 찍거나, 트레싱지에 인쇄해서 자르고 붙인 형태들이어서 일러스트 파일은 물론 포토샵 파일도 없고 간혹 JPG 파일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그땐 왜 그렇게 모든 걸 작게만 만들고 싶었는지 해상도가 저세상이다. 다른 이유로는 수제라는 핑계 아래 균질성이 떨어졌다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지난주에 재단한 책과 이번 주에 재단한 책의 크기 차이가 크다거나, 갑자기 주문이 어려워져 표지나 내지의 지종이 달라지기도 하고, 실 색이 바뀌는 등 난리였다. 판형을 통일하고 ISBN도 부여받은 2017년 이후의 작업은 《거울 너머》 시리즈 6권, 《도시, 선》 시리즈 4권, 그리고 『언제나 양해를 구하는 양해중 씨의 19가지 그림자』까지 총 11권이다. 표지 파일의 우측 상단 모서리를 모아봤는데 머리로만 떠올린 대부분이 그러하듯 생각보다 별로였다. 뭘 그렇게 알록달록하게 썼는지 색동저고리 같았고, 첫 번째 안은 파일 저장도 없이 탈락했다.

두 번째 안은 투명으로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언젠가 땡스북스에 갔다가 『스위스의 고양이 사다리』라는 책의 책갈피를 받았다. 고양이 실루엣이 그려진 명함 크기의 투명 책갈피였는데, 본문 속 사진에 대면 고양이가 담 혹은 계단 위에 앉아있거나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책만큼(아니, 사실 책보다 조금 더) 귀여운 책갈피였다. 투명 책갈피로 어떤 것들을 만들 수 있을지 이것저것 떠올렸다. 책을 접거나 밑줄 긋지 않는 (나 같은) 분들을 위해 밑줄과 형광펜 표시가 그려진 것, 읽다가 오탈자를 발견한 분들을 위해 교정 부호가 그려진 것에 더하여 필름이 그려진 것, 문장이 트윗처럼 보이게 SNS 틀이 그려진 것, 꼴 보기 싫은 말을 발견했을 때를 위해 취소 선이 그려진 것 등을 떠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 이 정도는 누구나 생각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들어서 찾아보니 혹시가 역시였다. 특히 팬들이 제작한, 인스타그램 피드형 포토카드가 많았고 그 정교함에 비해 다소 조악한 형태로 떠올린 필름과 트위터 틀, 취소 선이 탈락했다.

세 번째 안(이라기보단 두 번째 안에서 추린 것)은 교정 부호였다. 교정지 위에 표시되는 교정 부호 가운데 특별히 귀여운 것들(삭제하기, 삽입하기, 사이 띄기, 자리 바꾸기, 줄 이음표 등)과 밑줄을 섞어봤다. 색을 세 가지로 나눠서 한 장당 하나의 색으로만 인쇄를 하고, 세 장을 전부 모았을 때 또 다른 이미지가 완성되는 형태를 떠올렸다. 삭제할 때 그리는 꼬리 부분이 풍선 같아서 그 아래 노란 형광펜 표시를 달면 행사장 플래카드 같을 거라는 비약과 함께, 자리 바꾸기와 줄 잇는 표시를 바람의 형태로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급진적 해석으로 몇 가지 안을 그려보다가 불현듯 내가 일러스트를 이만큼 자유자재로 다루지 못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리기 어려운 부호들이 우수수 탈락했다.


네 번째 안(이라기보단 세 번째 안에서 가능한 것)은 사이 띄기, 삽입하기, 삭제하기와 밑줄이었다. 밑줄은 노랑, 삭제하기를 파랑, 사이 띄기와 삽입하기를 빨강으로 정했는데 가만 보니 삭제하기 표시가 약간 풍선 같고 펄레드는 핑클 꺼라는 메아리가 울리면서 빨강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삽입하기 역시 파란 하늘을 나는 갈매기 혹은 기러기 등의 조류와 연결시킬 가능성을 발견하여 파랑으로 바꿨다. 그러고 보니 왜 세 장인가? 반드시 세 장으로 나눠야 할 필요가 있는가? 그것은 로고에 있었다. 하우위아(HOW WE ARE)는 알파벳으로 여덟 자인데 로고에는 여섯 자인 점, HOW(→) WE(↓) ARE(→)라는 이횡일종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이횡일종은 방금 지어낸 말이다. 그래서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내가 만약 아무튼 시리즈를 쓰게 된다면 (갑자기) 제목은 『아무튼, 그래가지고』로 하고 싶다. 앞에서 했던 이야기를 자주 잊지만 ‘아무튼, 그래가지고’를 통해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미래지향적 에세이가 될 것이다. 아무튼 그래가지고 세 장으로 나눠서 각각 사이 띄기와 삽입하기를 한 장(C)에, 삭제하기를 한 장(M)에, 밑줄을 한 장(Y)에 그리기로 정하고 전부 합친 이미지를 검은 종이(K)에 인쇄하기로 했다.



파일 만들 때 딴생각을 했는지 WE와 ARE의 색상을 잘못 입력하여 한 차례 추가로 주문을 넣었다. 한 종당 최소 제작 매수를 x라고 할 때, 총 제작비는 6x(x+1)+500원(부가세 별도)이 들었다. 포장은 비닐 없이, 바탕지에 네 장의 책갈피를 실로 고정하는 방식이다. 제목을 ‘CMY+K’로 정해놓고 검은 책갈피를 왼쪽에 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CMY+K’는 책에 직접 밑줄을 긋거나 표시하지 않는 분들을 위한 책갈피다. 한 장씩 사용법을 설명하자면 우선 C는 책을 읽다가 띄어쓰기가 잘못된 경우를 발견했을 때, 혹은 추가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네임펜 혹은 마커와 함께 사용할 수 있다. M은 책을 읽다가 빠져야 마땅한 표현을 발견했을 때, Y는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발견했을 때 사용할 수 있다.  K는 C, M, Y의 이미지를 한 장에 모은 것으로 오류와 감응이 뒤섞인 모든 독서에 두루 사용할 수 있다. 고양이 책갈피만큼 귀엽거나 포토카드만큼 정교하지 않지만, 오타도 기꺼이 고쳐 읽어가며 책을 즐기는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