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1번째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2019년 11월 15일부터 17일까지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렸다. 금요일 5,583명, 토요일 8,090명, 일요일 9,039명으로 올해의 관람객은 총 22,712명이었다. 한 분, 한 분 들어오실 때마다 내가 입구에 가서 센 건 아니고 UE11 트위터에서 봤다. 방금 쓴 말은 꼭, 안 해도 될 말을 한두 마디씩 덧붙이면서 자기가 되게 웃긴 줄 아는 아저씨들 농담 같았지만 어쩔 수 없다. 남들이 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블로그에 뭔가 올리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일단 아무 말이나 막 해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아저씨들도 아마 젊은 사람들이랑 얘기를 해본 게 너무 오랜만이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구먼, 이라는 마음이었을 거다. 하지만 안 해도 될 말들은 대부분 안 하는 게 좋고, 그걸 굳이 입밖에 낸다는 건 해도 되는 말과 안 해도 되는 말을 구분하려는 노력을 덜 했거나, 그런 노력 자체를 떠올려본 적 없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 아저씨들과 안 해도 될 말들을 좋아할 순 없다는 말 같은 건 이쯤에서 그만하고, 원래 하려던 얘기로 돌아가 보자. 언리밋 후기를 쓰게 된 데에는 두 가지 계기가 있다.

하나는 딴짓의세상 블로그에 올라왔던 UE9 후기다. '후기이다'와 '후기다' 중에 뭐가 더 읽기 편할까? 당장 알 수 없으니 일단 둘 중에 더 짧은 것으로 써두고, 당시 그 후기를 보면서 이 분은 이런 글도 깔끔하게 잘 쓰시는구나 생각했다. '참가자가 행사 전체를 조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라는 당부로 시작하는 그 후기에는 행사 너무나 완벽했고 그 안에서의 시간과 만남들 모두 아름다웠으며 UE! UE! 만만세! 식으로, 나였다면 자칫 편향적으로 흘려보냈을 이야기가 공간과 작업의 특성상 가지는 한계, 그 안에서 설정한 목표, 고유하게 남은 질문 등의 항목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 후기를 읽으면서 '나는 어땠지? 나한테는 뭐가 남았더라... 나도 나중엔 이런 걸 꼭 써봐야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년에도 쓰지 않았다. 여기서 나오면 적절할 두 번째 계기는 "정말 어떠셨어요?"라는 질문이었다. 신간 입고하러 갔다가 만난 이로님이 이번 언리밋 어땠는지, 3일이라 힘들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 질문들보다 먼저 언급된 "퇴사 축하드립니다."와 같은 인사말의 일종인 것으로 해석하여 "허허. 예, 뭐."라고 대답한 후 멀뚱멀뚱하게 있었는데 다시금 "정말 어떠셨어요?"라고 물었다. '정말'이었는지 '진짜'였는지 헷갈리는 건 둘째 치고, 그런 본격적인 질문을 마주하자 막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조금 지쳤을 뿐 다른 때보다 특별히 더 힘든 점은 없었습니다, 라는 대답을 급하게 꺼내놓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정말 어땠는지' 생각했다. 그렇게 한 문장으로 정리될 3일이 아니었다.


2.

HOW WE ARE 부스는 1층 E05였다. 이 자리는 "팔찌 확인 부탁드립니다!"가 3초에 한 번꼴로 울리는 행사장 입구를 통과하여 몇 발짝만 직진하면 오른쪽에 있었다. 이 부스를 꼭 봐야지! 하고 마음을 먹은 관람객뿐만 아니라 그런 마음을 먹은 적 없는 관람객까지, 거의 대부분의 관람객이 입장 후에는 정신이 없어서 한 손에는 부직포 가방, 다른 한 손에는 전시장 맵을 들고 일단 앞으로 걷기 때문에 여러모로 좋은 자리였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자리가 다 좋았다. 작년의 자리는 2층에 스탭들이 드나드는 문 옆 자리였는데, 체감상 다른 부스보다 여유 공간이 많아 답답한 감이 없었고 드물지만 지인이라도 방문한 경우 부스 앞을 가리지 않고 옆자리 여유 공간에 설 수 있어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부담이 없었다. 재작년에는 올해 부스와 유사하지만 입구에서 직진은 아닌 1층 가벽 자리였는데 옆 부스가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였고 당시  <88Seoul>을 찾는 분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나는 그때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 리를 간다'는 속담이 이런 거구나 생각했다. 옆 부스를 가까이 보려고 인파 밖을 서성이거나, 옆 부스에서 계산을 마치고 인파를 막 빠져나온 분들 중 다수가 HOW WE ARE 부스에도 관심을 주셨다.

올해는 총 8종의 도서를 판매하고 8종의 마스킹테이프와 1종의 무가지를 증정했다. 거울 너머 시리즈 가운데 4종(<도서관람>, <수신확인>, <대형무덤>, <친구추가>), 도시, 선 시리즈 4종(<서울, 9개의 선>, <홍콩, 11개의 선>, <도쿄, 13개의 선>, <시카고, 8개의 선>)을 가져갔는데 이 중에 <도서관람>과 <친구추가>는 남김없이 팔고 왔다. 각각 열몇 부씩 남았던 거라 (다른 책은 수십 권씩 가져가면서) 이 두 책을 이번 언리밋에서 다 팔고 오면 기분이 참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둘째 날 다 나갔다. 도서 판매에 대해 이번에 반성한 부분은 판매내역을 기록하지 않은 점이다. 마켓은 물론이고 서점에 입고한 내역도 기록해두지 않아 왔으면서 이제와 반성하기도 새삼스럽지만, 특별히 이번 언리밋이 계기가 된 건 중간에 앵 언니가 부스를 잠깐 봐주었을 때의 일 때문이다. 둘째 날이었던가, 부스 도우미가 오기로 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어정쩡한 자세로 소변을 잔뜩 참고 서있었는데 앵 언니가 와서 화장실에 다녀왔다. 시원하게 일을 보고 돌아왔더니 앵 언니가 무슨 책이 몇 권씩 나갔는지 알려주고 갔다. 아니, 잠깐 봐주는 남도 뭐가 얼마나 나갔는지 신경을 쓰는데 그동안 너무 무신경했던 것 아닌가 싶어서 어쩌다 이렇게 판매내역을 기록하지 않는 게 당연해졌는지 생각했다. 책을 파는 자리는 그 공간에 사람이 많건 적건 마음이 시끄럽다. 내 책을 볼까? 내 책이 마음에 들까? 웃겼나? 별로인가? 설명을 더 할까? 가만히 있을까? 등등으로 마주 선 사람의 눈치를 보며 책 소개를 한두 마디씩 하다가 상대방이 책을 사겠다고 하면 아이고, 정말? 정말 살 거야? 괜찮겠어? 재미없으면 어떡하려고! 나중에 제대로 봤더니 빡치면 어쩌려고! 하는 마음이 든다. 허둥지둥 결제를 하고 나면 (결제는 또 후다닥 그렇게 재빠를 수가 없다, 마음 바뀔까 봐) 설명을 좀 더 할 걸 그랬나, 이 부분은 이래서 이렇게 했다고 더 말할 걸 그랬나, 아니야. 가만히 있길 잘했나, 오락가락한다. 그러고 나면 행사는 매번 돈으로 환산된다. '그날은 얼마를 팔았지.'로만 남아서 어떤 행사에서는 어떤 책이 더 많이 나갔는지, 비슷비슷해 보이는 내 작업 중에서도 사람들이 어떤 결과물을 더 선호하는지 같은 건 알 수가 없다. 며칠 전에 시트 하나를 만들었다. 늦었지만 서점 입고 내역부터 기록을 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서점 입고 내역은 작년부터 써서 보낸 거래명세서가 남아있고, 정산 내역은 메일과 통장에 남아있어 역순으로 채우는 중이다. 행사 때마다 탭을 새로 만들어 기록하면 좋을 것 같다.

다시 UE11로 돌아가서, 가져간 양과 가져온 양을 비교해봤을 때 현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시카고, 8개의 선> 또는 <서울, 9개의 선> 같다.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얼마를 팔았지'로만 따져보면 작년 UE10 이틀, 올해 도서전 5일 동안 판 것과 비슷했다. 결제 수단별 금액 순위는 카드 - 계좌 이체 - 현금 순이었다. 사실 엄청 많이 팔릴 줄 알았다. 행사 첫날이었던 15일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서 주말 부스 도우미에게 실적이 좋지 않다, 기대를 왜 그렇게 많이 했을까 이야기를 나눴다. 흐름은 이랬다. 첫째, 작년이 특별했다. 도시, 선 시리즈를 만든 첫 해였고 언리밋에서 처음 파는 신간이 두 권이나 됐다. 둘째, 시카고는 멀다. 도쿄나 홍콩에 비해 쉽게 갈 만한 곳도 아니고 관심이 덜할 수밖에 없다. 셋째, 아직 첫날인데 너무 일희일비 아니냐. 그리고 판매도 판매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작업을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는 걸 잊지 말자. 주말 이틀 동안은 '소개'에 주력했다. 자꾸 현금 봉투를 세고 싶고, 카드 결제 내역을 확인하고 싶을 때마다 (바로 확인하긴 했지만) 이 자리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걸 상기하며 한 마디라도 더 했다. 아, 그리고 도우미와 나눈 이야기 흐름 중에 다소 첨예한 대립을 겪은 것이 진열 문제였다. 증정용으로 만든 마스킹 테이프를 수도용 투명 호스에 끼워 전면에 진열했는데, 당신의 의도와 달리 그 마스킹 테이프들이 표지 디자인과 연결되지 않고 오히려 책을 살펴보려는 시선을 막는다는 것이 도우미의 의견이었고 아니, 그걸 (내가 얼마나 열심히 붙였는데) 지금 다 잡아 뜯으란 거야?가 내 의견이었다. 그러다 작년과 재작년엔 어떻게 진열했는지 사진을 찾아봤다. 보여주고 싶은 것에 들떠 보여줘야 할 것을 가린 느낌이었다. 둘째 날 아침에 가자마자 테이프가 주렁주렁 달린 호스를 뜯어내고 그 자리에 간단한 책 소개와 가격 태그, 결제 관련 안내를 붙였다.


3.

꽤 오랫동안 모든 사건을 친목의 개념으로 이해했다. 그게 다 저 사람이랑 저 사람이 친해서 그런 거고, 나도 너네들이랑 친해지고 싶은데 너네는 왜 나한테 관심이 없냐는 마음이었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나쁜 건 아니지만, 사람 사이 가깝거나 멀어지는 것이 내가 용을 쓴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닌데 너무 일방적이었다. 무엇보다 친목의 개념으로 모든 걸 해석하면 언리밋 같은 행사 자리에서 다른 부스를 돌아다니는 것, 다른 참가자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며 왜 내 부스에는 안 올까? 혹은 여기서는 사고 저기서는 안 사면 저 부스에서 섭섭하지 않을까? 등등별 게 다 신경이 쓰인다. 지금은 친목이 아니라 응원의 개념으로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다. UE11에서는 당신의 작업 멋있고 훌륭하며 내 지갑 활짝 열어 응원합니다, 라는 마음으로 몇몇 부스를 정해놓고 돌았다. 관람객들이 왜 그렇게 즐거운 표정으로 한아름씩 안고 다니는지 알 것 같았다. 책들이 갇힌 응암 수용소처럼 나온 아래 사진에는 현금으로 산 것, 신용카드로 산 것, 도우미가 자기 현금으로 산 것, 내가 도우미의 현금으로 산 것, 감사하게도 선물로 주신 것 등등이 섞여있다. 이번이 네 번째 참가인데 그동안은 내 부스를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친목으로 해석한 문제 말고도 왠지 기가 죽을 것 같아서 되도록이면 가만히 있었다. 돌아다녀보니 상대적으로 내 부스가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이런 작업들과 함께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내가 만든 것을 전시 중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마냥 기가 죽는 것도 아니었다. 막연하지만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대한 생각도 이때 제일 많이 했다.


4.

A 때문에 B가 떠올랐다. B를 먼저 이야기한 다음에 A를 꺼내보기로 하자. B는 4년 전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UE7에서 부스를 방문한 어느 관람객에게 들은 말이다. 방문 당시 했던 말이 아니라 행사가 끝난 후 며칠 뒤에 전화를 통해 했던 말이다. 명함을 보고 연락했다는 그는 작은 출판사를 운영 중이라고 하며, 내 작업의 진행 상황과 자신의 출판사보다 작은 내 책방의 운영 현황에 대해 상세히 물었다. 거 뭐 둘 다 잘 굴러가지도 않는 것 같은데 자기 일을 도와보지 않겠냐는 제안에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고 책방 운영과 함께 내 작업을 계속해보고 싶다고 답하자 그가 "꿈은 크고!"라고 했다. 통화였던 탓에 '크고' 뒤에 붙은 게 느낌표였는지 물음표였는지 잘 모르겠다. 그 통화에는 누가 뭘 물어본다고 해서 전부 대답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알게 된 긍정적 역할도 있긴 했으나, 그가 외친 "꿈은 크고!"의 부정적 역할이 너무 컸다. 그 후엔 뭘 하든 "꿈은 크고!"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크고' 다음에 생략된 말들을 추측하느라 기운을 뺐다. 그래도 4년은 긴 시간이었고, 좋아하는 디자이너 혹은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그 출판사와 함께 훌륭한 작업물을 내는 걸 보면서 '와, 멋있다. 작업비는 제대로 챙겨주셨으면 좋겠네.' 하는 수준으로 잊었다. 그래도 완전히 잊은 건 아니라서, 언리밋 혹은 다른 행사에서 그와 비슷한 나이대의 관람객에게는 무척 방어적으로 대했다. A는 그런 방어의 대상에게 들은 말이다. 그녀는 UE11 둘째 날 부스를 방문한 사람 중 하나였는데, 낯이 익어서 이 사람을 어디서 봤더라 계속 생각하다가 작년에 만난 분인 것이 떠올랐다. 자기는 그림을 그린다고 했던 말과 이런 데를 처음 와보는데 정말 재밌는 게 많다고 했던 말도 생각이 났다. 작년에 뵀었다고 말하는 것이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 같고, 작년에 봤다면 오히려 실망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그쪽에서 먼저 작년 얘기를 하면서 그때 이걸 사갔는데 이번에는 저걸 읽어보겠다고 했다. 또 허둥지둥 결제를 마치고 감사 인사를 했더니 "부지런히 쓰세요!"라면서 갔다. 부지런히 쓰라는 말이 왠지, 꿈은 커도 된다는 말처럼 들려서 두 개의 말을 한참 곱씹었다.


5.

아쉬운 점이 많다. 미처 들르지 못한 부스가 많고, '번역할 수 없는 독일어 단어들' 같은 프로그램은 꼭 듣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3일 내내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반가움 혹은 감사함 등을 양껏 표현하지 못 했고, 마지막 날에는 아침잠을 못 이겨 지각까지 했다. 10월 30일부터 11월 17일까지 약 보름간 이사와 퇴사, 행사가 연달아 이어져서 혼자 그 시기를 '3사의 난'이라고 불렀다. 저 세 가지를 하나씩 무사히 끝낸 것만으로 다행이다. 아, 그 시기가 더 힘들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책과 증정품(마스킹 테이프) 제작 시기이기도 했기 때문인데 미리미리 안 만들고 뭐 하고 있었냐는 자책을 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행사 전에 무사히 나온 것만으로 다행이었다. 만약 다음에 또 참가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좀 미리미리 준비하고, 돈 세기보다 책 소개에 공들이고, 화장실은 꼭 지하로 가고, 중간중간 사진도 많이 찍고, 체력적으로 지치지 않게 노력하고 싶다. 무엇보다 마지막 날 박수 칠 때 더 크고 신나게 치고 싶다.

언리밋과 함께 여러 가지 일이 한꺼번에 지나고 나니 (착각이겠지만) 그 전과는 좀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떤 분기점이 되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중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다. 예를 들어 손톱을 깎을 때마다 1-2주 전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는 느낌이 들고, 더 짧은 주기로는 샤워를 할 때마다 몇 시간 전의 나보다 좀 새로운 내가 되는 느낌이 드는데 언리밋은 1년 주기로 달라지는 계기가 된다. 이중에 손톱 깎기나 샤워는 내가 원할 때마다 선택해서 얻을 수 있는 분기점이지만, 언리밋은 그렇지 않다. 미술관에서 열리는 다른 전시와 언리밋의 다른 점 중 하나는 자신의 작업이 이 자리에 전시되는 장면을 꿈꾸는 관람객의 비중이라고 생각한다. 언리밋을 찾는 관람객 중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거의 대부분이) 부스의 방향을 바꾸는 상상을 해볼 것이다. 그 비중 덕분에 부스의 안과 밖은 계속 바뀔 것이고, 언리밋이라는 자리가 해를 거듭하며 계속되어서 언젠가 나도 부스 안을 지킨 적이 있었지, 하고 떠올리면 무척 뿌듯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