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혼자 있을 때 웃긴 생각이 난다. 한참 웃다가 아, 이 얘기해 주면 나만큼 웃을 사람 혹은 나보다 더 웃을 사람이 누구지 기억을 더듬고, 누군가 혹은 몇몇의 얼굴이 떠오른다. 들으면 진짜 엄청 웃을 텐데! 나중에 만나면 꼭 얘기해 줘야지. 떠올린 누군가가 웃는 장면(혹은 나랑 같이 웃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그리다 보면 방금까지 혼자 웃었다는 게 약간 머쓱하고 조금 적적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상대방을 만났을 때 전개는 두 갈래로 나뉜다. 첫 번째 갈래는 이렇다. 아, 할 얘기 있었는데 뭐더라. 나 혼자 웃다가 상대를 떠올렸던 그 얘기가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애꿎은 상대 얼굴만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만나면 할 얘기 있었는데… 진짜 웃긴 얘기였거든요?”와 같이 하등 소용없는 물음표만 남발하다가 쓸쓸히 귀가한다.

두 번째 갈래는 이렇다. (이쪽이 좀 더 슬프다.) 만나자마자 그 얘기를 한다. 어느 지점에서 웃을 거라 예상했던 타이밍이 카페의 진동벨이나 일행의 합류, 성급하게 먼저 터져 버린 나의 웃음 등으로 인해 보기 좋게 어긋나고 말똥말똥한 상대만 남는다. 급기야 “사실은 아까 웃었어야 하는 부분이거든요.” 따위의 말로 애초에 얼마 없던 모양까지 빠지고 만다. 민망함과 우둔함의 복합적 작용으로 득점에 실패한 웃음 포인트를 굳이 하나하나 짚어 가다 보면 ‘고작 이런 걸로 터졌다니 혼자 너무 오래 있어서 약간 이상해진 걸까?’하고 최초의 웃음마저 의심하게 된다.

몹시 불안하게도 지금 이 글은 위의 두 갈래를 동시에 품고 있다. 당신을 웃기려고 보관해 두었던 기억의 행방이 묘연하며 애써 복구해 낸 기억이 당신을 웃기는 데에 실패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뜻이다. 약 2주 전에 참여했던 언리미티드 에디션 15 - 서울아트북페어 2023(이하 언리밋) 행사 중에 웃긴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이 얘기 이번 후기에 꼭 써야지, 이러저러한 맥락으로 요리조리한 타이밍에 넣어서 읽다가 딱 터지게 해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일복이 터졌다. 행사가 끝나자마자 각종 마감들이 서로 꼬리를 물었다. 밥 먹는 시간(그 어떤 일이 시급하다 한들 웬만해서는 끼니를 거르지 않는다)과 자고 일어나 초배와 산책하는 시간 빼고는 책상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못했다. 그렇게 허리와 손목이 뻐근해져 가는 동안 행사 중에 웃겼던 장면들도 희미해져 갔다. 안 돼! 사라지지 마! 나는 다급히 노트 앱을 열어 언리밋 준비물을 정리하고 행사 참여를 알리는 게시물을 미리 써 봤던 메모 위에 날아가기 직전의 기억들을 휘갈겼다.

일단 이렇게 키워드 형태로 남겨 두고 나중에 쓸 때 두뇌를 풀가동하면 세세한 내용이 살아날 거라는 헛된 희망 속에서 정신없이 또 며칠이 지났다. 바쁜 와중에도 ‘언리밋 후기 언제 쓰지?’라는 생각이 들면 노트 앱을 다시 열어 보고 뭔가 새로 생각나는 게 있으면(드물었다) 추가해 두기도 했다. 그러다 드디어 오늘 여유가 조금 생겨서 본격적으로 써 보려고 앉았더니 분명히 내가 쓴 건데, 쓸 당시엔 배꼽 도둑이었는데… 근데 이게 뭐였지? 첫 키워드부터 막혔다. 비밀의 언덕이라니. 그게 도대체 뭔데. 어딘데. 심지어 자기가 무슨 부제라도 되는 것처럼 다른 키워드들이랑 한 줄 떨어져 있기까지 했다. ‘비밀’도 ‘언덕’도 도무지 이 행사와 연결되는 지점이 없는 단어라서 두 어절을 바라볼수록 아득해졌고(지금도 너무 답답하다) 무슨 내용인지 떠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간 나머지 키워드들에 대한 기억도 잃을 지경이었다.
실명 혹은 공개 전 작품명이 거론된 부분은 모자이크

빛을 잃은 기억구슬들과 함께 기억쓰레기장에 나뒹굴면서도 해맑음을 잃지 않았던 빙봉적 자세로 본격적인 언리밋 후기의 시작을 선포한다. 그렇다. 지금까진 다 밑밥이었다. ‘이건 사실과 다른데?’라는 부분이 제법 나올테니 눈치껏 걸러 읽길 바란다는 주의사항을 약 천칠백 자에 걸쳐 떠들어 봤다. 11월 2일 목요일부터 11월 5일 일요일까지 있었던 일을 최대한 순서대로 쓰되 노트에 기록한 키워드들을 중간중간 녹이기로 한다. 쓰다 보면 불현듯 비밀의 언덕이 그 자태를 드러낼지도 모를 일이니 장기 지속 기억의 힘을 괄시하지 않도록.

목요일 오후 두 시쯤, 미리 싸 둔 짐(박스 세 개와 네트망, 접이식 수레였다)을 건물 1층의 입구에 내려놓고 집 근처 청년주택으로 향했다. 며칠 전 연습했던 대로 기계식 주차장의 출고 버튼을 누르고 쏘카 앱을 열었다. 운전석 아래 모래알이 한 보자기였지만 이전 사용자에 대한 별다른 코멘트를 남기지 않고 캐스퍼를 다시 집으로 끌고 갔다. 정확히는 옆집 주차장으로 가져왔다. 이 집은 주차장이 없기 때문에 차를 남의 집에 세워 두고 후다닥 짐을 실었다. 북서울미술관 주차장을 목적지로 찍자 내비가 33분 걸릴 예정이라고 했다. 뭐? 지금 세 신데? 메일로 공유받은 행사 안내에 따르면 설치 가능 시간은 목요일 네 시부터였다. 어젯밤에 검색했을 때는 분명 1시간 14분으로 나왔는데… 차는 이미 불광역을 지났고 늦는 것보다 낫다 여기는 수밖에 없었다. 구기터널로 향하는 진흥로는 은행나무가 죽죽 늘어선 길이었고 마침 다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이 길을 보조석이나 뒷좌석이 아닌 운전석의 시야로 지나는 게 처음이라 미루고 미루던 운전 연수를 올해 여름에 해치운 나 자신이 대견했다. 이제 남의 눈치 안 보고 내 짐은 내가 옮길 수 있는 사람이 되다니! 차에서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틀 수 있는 사람이 되다니! 쏟아지는 볕과 은행잎, 그리고 선미 새 싱글 앨범의 조화가 거의 영화 속 한 장면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여서 건방지게 창문도 내렸다가 터널이 시작되어 황급히 올렸다. 내부순환로와 북부간선도로를 지나자 미술관까지는 금방이었다. 주차장이 협소하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행사 전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널널했고, 네 시가 되지 않았는데 전시장 입구가 개방되어 있어서 부스로 직진했다.

부스 뒤 가벽에 붙일 시트지는 어느 정도의 크기가 적당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가로 길이 600㎜로 한 장, 900㎜로 또 한 장을 제작했다. 막상 가서 벽에 대 보니 600도 좀 크게 느껴져서 900은 고무줄을 풀지도 않았고(심지어 아직도 돌돌 말려 있다) 사다리를 쓸까 하다가 벌써 대기하는 팀이 생긴 것 같아 의자만 딛고 부착했다. 가벽 중간중간에 마름모 무늬가 있었는데, 그게 마침 부스하고 가운데 정렬을 이뤄서 시트지도 거기에 맞춰 붙였다. 이번 행사를 위해 야심차게 구매한 네트망으로 책 진열을 마쳤을 때는 네 시 반정도였고, 예약한 쏘카의 반납 시간은 여덟 시였지만 벌써부터 초조해져서(진짜다) 다시 부리나케 차를 몰았다. 다음 날 가 보니 양쪽 부스 모두 눈길을 사로잡는 형형색색의 포스터가 붙어 있어 가운데 낑긴 내 시트지가 너무 볼품없나 싶었지만 ‘야, 정신 차려. 그딴 생각을 하기엔 이미 늦었고 이거야말로 한국이 자랑하는 여백의 미 아니냐!’하는 정신 승리로 이겨 냈다. 아니. 못 이겼고 내내 부러웠다.

조촐하다 조촐해

금요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서 된장국을 끓였다. 보리와 검은 현미, 백미가 섞인 밥을 그릇에 퍼담을 땐 약간 비장해졌던 것 같다. 앞서 웬만해서는 끼니를 거르지 않는다 했으나 언리밋처럼 웬만한 일도 없으니 점심은 당연히 건너뛸 예정이라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했다. 아침 산책을 마친 초배에게 오늘부터 3일간 늦게 올 건데, 3일 지나면 다시 계속 같이 있을 거니까 짖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정말 이렇게 말했다) 제법 긴 당부를 남기고 구산역으로 향했다. 당시 의뢰받았던 원고의 교정지를 보면서 갔으나 한강진역부터 태릉입구역까지는 고개가 아플 정도로 깊은 잠에 빠졌다. 아무래도 서른한 개의 역은 너무 나른했다. 아니, 잠깐만… 지금 이 글이 더 나른한데? 행사 얘기는 언제 하는 거야? 최대한 일이 일어난 순서에 따라 써 보려고 했지만 마치 구산에서 태릉입구까지 한 번도 내리지 않고 앉아서 가는 것처럼 지루한 글이 되어 지금부터는 아래와 같이 주제를 나눠 보기로 한다.

  • 기억에 남는 손님들
  • 제작비와 월세
  • 탯줄의 흔적
  • 영상 치료

기억에 남는 손님들

언리밋 공식 계정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금요일 방문객은 7091명, 토요일 방문객은 7049명, 일요일 방문객은 8061명으로 행사 3일간 집계된 방문객 수는 총 22201명이었다. 물론 약 이만 명의 방문객 전부가 하우위아 부스에 다녀간 것은 아니겠지만 체감으로는 ‘정말 그 정도 온 것 같아’라고 느껴질 만큼 사람이 많았다. 금요일은 첫날이니까 많겠지! 했고 토요일은 토요일이라 많겠지! 했는데 놀랍게도 일요일에 제일 많아서 마지막 두 시간은 만약 내 뇌가 전구의 형태라면 퓨즈가 나간 기분이었다. 그래서 힘들었다는 얘기로 징징대려고 이 주제를 꺼낸 게 아니다. 사람멀미의 소용돌이 속에서 날 웃긴 자들이 있었다.

  1. 어떤 손님이 NOT YET을 가리키며 이거 쓰신 분이냐고 물어서 맞다고 했더니 재미있게 읽었다며 “저도 작업해야 되는데 계속 못 하고 있어서 작정하고 재수없는 사람이 돼 볼까 싶었어요.”라고 했다. 그건 그 책의 서문을 끝까지 읽어야 할 수 있는 농담이었기 때문에 듣자마자 엄청 크게 웃었고(지금도 웃기다) 고마웠다. 2년 전 그 책을 만든 이후 들었던 후기 중 단연 최고였다.
  2. 어떤 손님이 신간을 구매하며, 처음에 나를 알게 된 것이 친구가 보내 준 언리밋 후기 링크 때문이었다고 했다. 후기를 재미있게 읽고 다른 책도 찾아 보게 되었다고 해서 그 친구 누군지 참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서명을 부탁했다. 이름을 물어보니 인스타그램으로 맞팔 소통 중이나 대면은 처음인 김그래 작가님이었다. 갑자기 서로의 강아지 안부를 물으며(마루와 또미는 정말 귀엽다) 왁자하게 인사하고 헤어진 후 한동안 혼자 뭉클했다. 아무도 안 보는 줄 알았는데 친구가 알려 줬다니! 앞으로 어디에 무슨 글을 쓰든 최선을 다해 웃겨야겠다고 다짐했다.
  3. 어떤 손님이 자기를 기억하냐고 물었다. 죄송한데 제가 사람 얼굴을 잘 까먹는다고 대답한 후에 부지런히 기억을 헤집고 있을 때 손님이 “저 ○○이 친구…”라고 말했다. 순간 ○○이가 누군데 이렇게 익숙하지? 싶어서 목청껏 “○○이!”라고 외쳤는데 입 밖으로 그 이름을 내뱉고 보니 약 5년(계산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6년) 전에 헤어진 사람이었다. 이런 행사에 참여하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중에는 예상치 못한 얼굴도 많은데 그때마다 놀란 마음에 아무 말이나 막 내뱉고 행사가 끝난 후 후회했던 경험이 있어서 이번 행사 직전에 ‘이번엔 누굴 만나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자’고 다짐한 참이었다. 그러나 다짐은 다짐일 뿐, 너무 당황하니까 말들이 “야, 우리 나간다. 너는 그냥 입만 딱 벌리고 있어!”라고 외치면서 마구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뭐라고 떠들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그 손님이 부스를 떠나고 나서 ‘근데 고맙네’라고 생각한 건 분명하게 남아 있다. 왜냐면 걔랑 헤어졌을 때 걔 친구 중에 어떤 애는 나 그때 텀블벅 프로젝트 중이었는데 금액이 간당간당했단 말이야? 근데 헤어졌다는 얘기 듣고 돈 바로 뺀 애들도 있었고, 또 다른 애는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개인 계정 작업 계정 팔로우도 다 끊고 그래서 아, 걔 친구로 알게 된 사람들은 나를 ‘걔랑 사귀는 사람’일 때만 관심을 보이고 그냥 나와 내 작업으로는 인정하지 않는구나. 내 작업이 그걸 넘어설 만큼 흥미롭지 않구나. 라는 생각으로 속상해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너무 그렇게 확대 해석할 필요도 없겠구나 싶어졌다. ○○이 친구라던 그 손님은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쏟아내는 내게 “못 보던 게 많네요.”라며 책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두 권이나 구매했기 때문이다.

제작비와 월세

이번 언리밋에는 총 8종의 도서(대형무덤/친구추가-다 팔고 옴/홍콩, 11개의 선/도쿄, 13개의 선/시카고, 8개의 선/언제나 양해를 구하는 양해중 씨의 19가지 그림자/NOT YET/무슨 뜻으로 하는 말), 2종의 비도서(비둘기와 모래시계/쓸말잇기)를 가지고 나갔다. 참여한 행사 중 시작할 때 가지고 간 수량과 끝난 뒤 가져온 수량을 처음으로 기록했는데, 그동안 한 번도 기록을 안 했기 때문에 비교할 대상이 없지만 내 느낌상으로는 가장 많이 팔렸다. 3일간의 카드결제와 계좌이체, 현금을 다 합친 매출액이 신간 500부의 제작비와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월세를 더한 금액과 비슷했다. 한 해를 쉬고 나가는 언리밋이라 더 신이 났는지 좀 많이 열심히 팔았다. 만약 누군가 대형무덤을 든다? 그러면 국내에 있는 무덤 여덟 군데에 놀러 다닌 이야기인데요, 약간 비석 같아 보였으면 해서 표지에 형압을 넣었고요~ 아니면 도시, 선 시리즈를 든다? 그러면 도시별 지하철 탑승기인데요, 그 도시에 가서 지하철을 노선별로 처음부터 끝까지 안 내리고 쭉 타보는 거고요, 이렇게 위가 까만 건 지하 하얀 건 지상 물결 표시는 강이나 바다 보이는 구간이에요~ 아니면 해중이를 든다? 양해중이라는 인물 주변의 열아홉 명이 각각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연작소설이고요, 매 에피소드마다 시기를 짐작할 수 있도록 신문 기사 두 편씩 인용되어 있습니다~ 아니면 NOT YET을 든다? (이 책은 일단 입으로 낫 옛! 이라고 대뜸 외치면 웃는 분들이 많았다) 앞으로 이러이러한 책을 만들지도 모른다 이렇게 예고하는 카탈로그고요~ 아니면 신간을 든다? 어떤 하루를 다섯 번 살게 되는 이야기인데요, 아침에 내린 선택으로 인해서 그 이후 시간들이 다 달라지기 때문에 초반에 두세 페이지는 내용이 같아요~ 얼마나 멘트가 한결같았으면 옆 부스였던 김로로 작가님이 웃을 정도였다. 웃겼다는 데에 또 기분이 좋아져서 저 지금 드르륵 탁 드르륵 탁 거의 약장수라고 방정을 떨었다. 이런 행사에서는 오는 사람 가리지 않고 떠난 사람 연연하지 않으며 입력된 멘트를 막힘없이 송출하는 로봇이 되었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친히 설파한 동료 제작자들(대표적으로 더쿠의 물고기머리와 닷텍스트의 고성배가 있다)에게 다시금 고마웠다.

탯줄의 흔적

행사 며칠 전에 ‘그래도 이번 언리밋만을 위한 뭔가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지난 번 언리밋 후기에 쓴 말도 있는데?’하는 생각이 들어서 황급히 〈골전도 재생 목록〉이라는 무가지를 만들었다. 원래 올해 초 블로그에 연재를 하겠답시고 몇 편 올리다가 포기했던 글인데 마침 종지부를 찍을 만한 일(아빠의 회갑연)을 겪어서 새로 쓴 마지막 글까지 합하여 딱 50부만 만들기로 했다. 근데 이제 손이 너무 많이 가게 만든 거지. 머릿속으로 떠올릴 때는 어, 그래. 이렇게 탁! 탁! 타라락! 하면 되겠네 했는데 현실은 ‘어’만 나흘이었다. 결국 30부 밖에 못 만들고(그마저도 다섯 부는 마지막 날 부스에서 만들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관심을 갖는 분이 있을까 봐 눈에 안 띄는 자리에 눕혀 놨다. 2만 원 넘게 구매하여 무가지를 받게 된 손님들 대부분 기대치 못한 사은품에 기뻐하셔서 나도 기뻤다. 그중 몇몇 분은 배보다 배꼽이 큰 거 아니냐며(어떤 분은 배꼽이 커도 너무 큰 거 아니냐고 했다) 나를 진심으로 걱정했는데 사실 배꼽이란 게 탯줄이 떨어지면서 생긴 자리잖아. 남의 몸에 물리적으로 연결되어야 목숨 부지가 가능했던 시기를 상징하는 건데 어쩌면 인간 자체가 다른 인간 없이는 태어나지도, 살아가지도 못한다는 걸 잊지 않게 만드는 표시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 자국이라면 배보다 훨씬 커도 괜찮은 거 아닐까 하고. 비약이 좀 심하고 난데없지만 아닌 게 아니라 이번 행사에서는 나 진짜 다른 사람들 덕분에 살고 있구나, 나 혼자 잘났다고 건방 떠는 짓은 그만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친구가 손님 편에 전해 준 비스코티, “소라 씨!”하고 웃으면서 주고 간 스콘, 옛 동료들이 몰래 두고 간 풀빵, 냉장고의 기운이 남아 있던 지퍼백 속 호두과자 같은 것들이 스러져 가는 내 기운을 북돋았다. 그냥 먹을 걸 줘서 좋아한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예로부터 먹을 걸 나눈다는 건 이 각박한 한반도에서 예사로 보고 넘겨버릴 수 있는 마음이 아니다. 난 정말 그렇게 생각해. 먹을 건 소중한 거라고. 근데 먹을 것 없이 존재만으로 고마운 사람들도 있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마지막 두 시간은 정말 퓨즈가 나가 있었는데 그때 온 손님 중에 기운이 남다른 분이 있었다. 사람의 기운은 저마다 천차만별이어서 너무 세거나 너무 약할 수도 있고 그중에 어떤 사람을 맞닥뜨리는 문제는(특히 이런 행사에서는) 불가항력에 속하는 거지, 손님을 기운따라 가려 받을 것도 아니기에 최선을 다해 응대했다. 오히려 퓨즈가 나간 게 도움이 된다고 여겨질 만큼 강력한 기운이었고 난 체력이 다한 상태라 ‘이제… 정말… 와장창 깨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응대를 포기하고 싶어지던 순간 김강이 디자이너가 나타났다. 손님인 척 내 부스 앞에 서서 책을 살피는 사람이 김강이 디자이너인 것을 발견하자마자 그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말도 안 되지만 무선 충전기에 올려둔 내 핸드폰처럼 잠깐 그렇게 기대어 있는 동안 기력 보충이 된 것 같다. 난 정말 그렇게 생각해. 충전은 다 접촉의 문제라고. 눈치챘겠지만 글이 점점 길어지면서 형형했던 내 집중력의 자취가 사라지고 있다. 서둘러 마지막 주제로 가야 한다.

영상 치료

이 주제는 좀 창피해서 제일 마지막에 넣었다. 막상 쓰려고 보니 예상보다 더 수치스러우니까 다들 좀 나가 줬으면 좋겠다. 다 읽고도 안 놀릴 사람만 남아 줬으면 좋겠어. 그럼 시작할게.(새침) 행사 며칠 전 언리밋 공식 메일로 〈잠깐 낭독회〉에 대한 공지가 있었다. ‘시각적인 작업이 메인이 되는 행사에서 텍스트의 비중이 높은 팀들을 위해’ 처음으로 마련된 이벤트라는 문구에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뭘 읽어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뭐라도 읽어 볼게!”라는 기세로 신청했다. 3일 중 참가팀이 고르는 시간에 딱 5분씩, 1회만 진행한다기에 제일 첫날, 전반부로 골랐다. 왜냐하면 이런 자리가 있으면(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무척 긴장이 되기 때문에 둘째 날이나 셋째 날로 골랐다간 내내 배탈에 시달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며칠 후 받은 시간표에는 내가 1등이었다. 나중에 하는 것보단 처음이 낫다고 여겼지만 막상 낭독할 때는 흑염소가 되었고, 읽은 내용도 좀 이상한 부분이었던 것 같아서 끝나고 나니 후회막심이었다. 아, 괜히 했나. 아니야, 몇 명 듣지 않았잖아. 그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따위의 복잡한 심경 속에서 첫날 행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경이님이 올린 스토리를 봤다. 내가 낭독하는 모습을 찍은 영상이었다. 근데 그 자리에 경이님이 있었는지도 몰랐던 건 둘째치고 아니, 내가 너무 잘 나온 거야. 엉망진창의 일부만 떼어놓고 보니까 제법 그럴듯해 보이면서 머릿속에서 ‘나 자신… 별로였던 순간’이 ‘나 자신… 봐 줄 만했던 순간’으로 바뀌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몇 년 전 ‘도시, 선’ 시리즈를 시작했을 때 양장점과 어느 매거진에 실리는 대담을 진행한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진짜 텅 빈 상태로 대담 장소에 갔다. 하필이면 생애 최초로 심리상담을 받게 되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온갖 얘기와 눈물콧물을 쏟고 난 다음 일정이 그 대담이었다. 또 울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싶었던 자리에서 나는 정말 울고 싶었다. 서체 디자인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서 할 수 있는 말이 없었고 양장점 두 사람은 놀랄 만큼 유창했다. 심지어는 대담 진행하셨던 분이 내가 거의 모든 질문에 “저는… 펜바탕체가 예뻐서… 사용했고…” 따위로 멍청하게 답하자 그렇게 말씀하시면 쓸 수 있는 말이 거의 없다고 진심으로 걱정할 지경이었고 당장이라도 나를 이 대담에서 빼줄 수 없을지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심정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친구에게 카톡으로 그날의 상황을 전하다가 ‘너무 쪽팔려’라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목놓아 울었던 기억이 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그날 일을 차차 잊었다. 그러다 대담이 실린 매거진을 받았는데 진행자 분이 내가 했던 헛소리를 보기 좋게 포장해 주신 건 둘째치고 아니, 내가 너무 잘 나온 거야. 대담 참여자 사진을 실어야 한다고 해서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찍어준 사원증 사진을 보냈는데 뭘 어떻게 보정한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가 막히면서 머릿속에서 ‘나 자신… 진짜 최악이었던 순간’이 ‘나 자신… 잘 나왔으면 노상관’으로 바뀌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믿기 어렵겠지만 진짜다. 그럴 만큼 잘 나왔다. 물론 나라고 보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그것마저 상관없으며 한동안 나는 이 일을 ‘보정 치료’라고 일컬었다. 경이님의 ‘영상 치료’는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메일로 원본까지 받았다. 실제 그 순간이 성공적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대부분 치료가 필수적이다. 마지막 날 행사가 거의 다 끝났을 때 이로님이 잠깐 낭독회는 어땠냐고, 첫 번째라서 긴장되진 않았냐고 물어서 “아뇨? 그런 긴장은 전혀 없었고 재밌기만 했습니다?”라고 답했는데 왜 그런 허세를 떤 건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을 노릇이다. 경이님 영상에 대한 만족감에 취해 대답을 과장되게 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 후기를 시작할 때엔 구글 문서의 기본 설정인 Arial 11포인트, 행간 1.15 기준으로 5페이지까지 이어질 줄 몰랐다. 황급히 끝내기 전에 메모에 남겨 두었던 키워드들이 잘 녹아 있는지 확인해 본다. ‘○○이 친구’ 썼고, 그 밑에 모자이크된 건 행사 동안 집에서 미술관 오가는 지하철에서 읽었던 외주 원고의 제목인데 아직 미발표작이라 밝힐 수 없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그 글 덕분에 3일간의 지하철 여행이 지루하게만 남지는 않았다. 아아! 진짜 재밌는데! 공개되면 여기에도 제목을 밝히고 링크를 걸 테니 기다려 달라. ‘운전’ 얘기는 앞 부분에 좀 쓰긴 했지만 철수하는 날에 대해서도 빠뜨릴 수 없다. 끝날 때도 지하철을 타면 짐도 많고 너무 힘들 것 같아서 편도로 그린카를 빌렸는데 그건 2023 임소라의 선택 중 베스트 초이스였다. 비가 내렸고 길이 막히기까지 했지만 지하철이나 택시보단 내가 운전해서 가는 차가 훨씬 쾌적했고, 다음에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언리밋을 또 나가게 된다면 그때는 공유 차량을 3박 4일로 대여해서 매일 차로 오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대표로 보이는 것’은 안 썼네. 이건 ‘○○이 친구’의 ‘○○이’를 만나던 무렵 이런저런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하우위아의 대표를 ‘○○이’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서 ‘왜 나를 대표로 인식하지 않는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하등 쓰잘데기 없는 고민이었다. 내 작업 계속 하면 될 일이었다. ‘불가항력’은 썼고, 마지막 키워드도 썼다. 아, 비밀의 언덕이 도대체 뭐야 싶어서 검색했더니 영화 제목이었다. 이 영화 뭐였더라 생각해 보니까 행사 끝나고 며칠 뒤에 갔던 고잉홈에서 혜영님한테 언리밋에서 있었던 웃겼던 일 얘기해 준다고 메모 열었다가 얘기가 다른 주제로 넘어가고 혜영님이 영화 절대 꼭 보라고 추천해서(이 영화 혜영님이 추천한 거 맞냐고 아까 카톡으로 확인까지 했다) 급하게 적어둔 거였다.

행사 후기랍시고 쓴 글이 이렇게 긴데 정작 행사에 대한 얘기가 너무 없는 것 같아서 지금 좀 당혹스러워. 어, 일단 큐브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참가팀 부스마다 이번 언리밋 키컬러를 지닌 큐브를 나눠 줬다. 보통 이름표나 행사명이 적힌 태그 같은 걸 배포하는데 큐브라니! 이 큐브는 이번 언리밋에 대한 효과적인 시각적 상징물이기도 했지만 손님을 응대하거나 기다리며 불안하고 초조할 때마다 내 손 안에서 이리저리 제 몸을 돌려가며 심리적 안정감을 주었다는 측면에서 참가팀에 대한 복지 및 구호물품적 성격도 가졌다. 또 뭐가 있을까. 이번 언리밋은 부스를 지키는 게 즐겁기도 했고, 열심히 하는 만큼 많이 팔리는 걸 보니까 당최 멈출 수가 없어서 눈여겨 보았던 프로그램을 잠시라도 엿듣거나 다른 부스를 여유롭게 둘러보지 못한 게 후회된다. 다음에 또 나가게 된다면 공유 차량 3박 4일 대여와 함께 마지막 날 한 시간에서 두 시간가량 부스를 대신 봐줄 사람을 행사 전에 미리 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또 언제 다짐이란 걸 했냐는듯이 다 까먹고 퀭하게 서 있겠지. 아, 그리고 화장실은 반드시 지하 1층으로 가야 한다. 1층도 좋지만 웨이팅 없는 지하 화장실은 정말이지 그렇게 쾌적할 수가 없다. 오! 그리고 비도서의 약진이 대단했다. 사실 책갈피와 노트는 만들어 두고도 약간 자신이 없었는데 예상보다 많이 팔려서 ‘만들기 잘했지 뭐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노트 설명할 때 “표지에서 시작된 끝말잇기를 이어 가셔도 좋고, 안 이어 가셔도… 좋은… 노트입니다…”라고 아련하게 말하면 열에 여섯정도는 웃어서 뿌듯했다.

언제 끝나. 왜 문단 늘리는데. 아니, 쓰다 보니까 메모 안 해뒀던 게 생각이 났어. 이런 말을 하긴 좀 웃기지만 저 위 어딘가에서 떨어져 나갈 사람 다 떨어져 나갔을 테니 계속해 보자면 나는 언리밋을 나만의 특별한 뭔가로 생각해 왔던 것 같다. 언리밋! 내 인생 최고의 도파민! 일 년씩 내 작업 수명을 늘리는 내 포트폴리오의 동력! 이런 태도를 내 작업만의 특별한 지점이라고 생각하면서 내심 자랑스러워했고, 누군가 나와 비슷하게 말하면 ‘아닌데? 내 건데?’하는 모난 마음으로 불편하게 여겼다. 그리고 올해 언리밋에서 그게 깨졌다.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 각각에게 특별한 행사였고 그 사실이 더 이상 불편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과 그들이 가져온 작업에 쏟았던 시간들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나와 비슷할 거라 대강 짐작할 수는 있을 것 같아서 내내 반가웠고, 일 년 중 사흘간 한 곳에 모여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애틋했다. 다들 고마웠다고 미처 전하지 못한 인사로 이번 언리밋 후기를 마친다. 우왕좌왕하고 장황하기까지하며 다행스러운 점이라고는 비밀의 언덕 정체가 밝혀진 것밖에 없는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분들께도 감사를 전한다.